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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룩한 밤 어둠과 빛의 충돌, 믿음과 복수, 폭력

by 좋은내용 2025. 5. 7.

영화 거룩한 밤 데몬헌터스

스크린을 뒤덮은 어둠과 빛의 충돌

2025년 초겨울, 극장에서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를 본 순간 나는 예상했던 전형적인 오컬트 액션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성직자가 악마와 싸운다”는 익숙한 설정에 어느 정도 기대치가 낮아져 있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10분 만에 나는 완전히 몰입했다.

오프닝은 낡은 유럽의 수도원. 어두운 복도, 반복되는 성가, 그리고 갑작스러운 피 튀기는 의식 장면으로 영화는 단숨에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악마와의 전쟁이라는 흔한 플롯을 이 영화는 철저하게 '신앙'이라는 테마와 함께 뒤섞어낸다. 전투복 대신 수도복을 입고, 총 대신 묵주와 의식을 사용하는 주인공들의 설정은 오히려 전투 장면을 더 무겁고 상징적으로 만든다.

주인공 루카스 신부는 과거 악마에게 가족을 잃고, 그 복수심을 억누른 채 교황청 비밀 조직 ‘헌터스’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그는 미사 시간에 사람들에게 자비를 설파하면서도, 밤이 되면 악마를 처단하는 ‘사제형 전사’로 변모한다. 이런 이중성은 캐릭터를 단순히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고통과 죄책감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인물로 만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전투의 리듬이다. 성경 구절을 읊으며 진행되는 퇴마 장면, 라틴어로 속삭이는 주문과 함께 터지는 붉은 연기, 그리고 기괴한 형태로 나타나는 악마들. 이 모든 것이 극장의 사운드와 조명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극장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숨소리조차 삼키며 악마와 의 전쟁이 일어나는 스크린 화면속을 빨려들어가듯이 바라보았다. 

믿음과 복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들

거룩한 밤이 단순한 액션 호러 영화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윤리적 갈등이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단지 악마를 죽이는 데몬 헌터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신의 뜻’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한 ‘개인적 복수’인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영화 중반, 그가 동료인 마리아 수녀에게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거룩한 거라 믿나요?”라고 묻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리아 수녀는 신앙보다도 생존에 가까운 직감을 따라 움직이며, 루카스의 고뇌에 실용적인 조언을 건넨다. 이 둘의 케미는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과 미묘한 신뢰감을 유지하며, 인간적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또한, 영화는 '악'에 대한 개념을 단순히 외부 존재로 치부하지 않는다. 어떤 악마는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 태어난 죄책감, 원한, 공포의 화신으로 나타난다. 이 설정은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 구도를 해체하며, 관객이 스스로 ‘악’의 정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루카스가 마주하는 마지막 적 자신의 딸을 죽인 자의 형상을 한 악마와의 대면은, 단순한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감정적 절정이다. 그 싸움은 물리적인 결투가 아니라, 용서와 자책, 신에 대한 분노와 화해가 겹쳐진 내면적 전쟁이다. 이 장면을 극장에서 바라보는 동안, 나는 액션보다도 더 큰 감정의 진동을 느꼈다.

‘거룩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리고 그 너머

이 영화의 제목 거룩한 밤은 단순히 성스러운 축일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룩함’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희생, 그리고 그 모순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데몬 헌터들이 적을 처단하면서도 눈빛이 흔들리고, 때론 무력하게 무릎 꿇는 장면은, 신앙이 늘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악마도 인간이 만들어낸 악마심, 쫒는 자도 하물며 인간이지 않나.

루카스는 마지막에 무기를 내려놓는다. 그는 악마를 죽이기 직전, 자신이 지키려던 ‘거룩함’이 오히려 수많은 이들을 다치게 했다는 걸 인정한다. 이 엔딩은 전형적인 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우리가 믿는 정의란 무엇인지, 과연 누구를 위한 믿음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극장 밖을 나서며 나는 무겁지만 확실한 여운을 안고 있었다. 이 영화는 단지 “악을 물리쳤다”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신념을 지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촘촘하게 설계된 미장센, 음산하지만 때로는 경건한 사운드트랙, 묵직한 대사 한 줄 한 줄이 모두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오컬트 액션이 아닌, "신념과 인간성 사이의 깊은 균열을 탐구한 작품" 이다.

총평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긴장감과 메시지를 모두 갖춘 드문 장르 영화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마주하는 경험은, 단순한 공포나 스릴을 넘어서, 인간이 지닌 어둠과 빛을 동시에 마주 보게 하는 체험이었다.

무기보다 묵주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 영화는, 싸움 그 자체보다 왜 싸우는지가 중요한 이야기임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강렬하고 묵직한 한 방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 속에 질문 하나쯤 남기고 싶다면 반드시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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