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일상 속 첫 걸음 – 팬데믹이라는 이름의 공포
라스트 마일은 재난 상황이 한창인 시점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고 복구되는지를 그리는 일본 재난 서스펜스 영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현실적인 배경을 영화 속 주제의 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허구가 아닌 우리 모두가 겪었던 시간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영화는 한 택배회사의 시스템이 한순간에 마비되면서 벌어지는 연쇄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위기 상황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야기의 시작은 평범한 하루처럼 보이지만, 점점 불안이 엄습해온다. 택배 직원이 원인불명의 감염 증세로 사망하고, 이어서 물류센터가 폐쇄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흐름에서 이탈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시스템’의 정지가 주는 충격이 극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생필품은 배송되지 않으며, 정보는 끊기고, 불신은 확산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이런 공포의 정황을 단순히 자극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다중 시점 서사로 각 인물들의 감정, 기억, 두려움을 따라가며, 이 위기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감정, 인간됨에 대한 시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가 팬데믹을 통해 경험했던 감정들—혼란, 불신, 외로움, 분노—은 영화 속 인물들에도 똑같이 투영된다. 예컨대 감염자와의 접촉을 은폐한 이웃에 대한 혐오, 가짜 뉴스에 휩쓸리는 SNS, 마스크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 등은 그저 연출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었다. 라스트 마일은 그런 일상의 균열을 날카롭지만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낸다.
‘라스트 마일’은 택배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직전의 마지막 경로를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그 의미는 단지 물류의 단계를 넘어,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걸어야 할 ‘마지막 한 걸음’으로 확장된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 연결과 연대의 재발견
라스트 마일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인간 본성의 어두움뿐 아니라, 그 안에서 움트는 희망의 씨앗을 보여준다. 각 인물들이 맞이하는 고난 속에는 공통된 질문이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그 여파는 택배회사 직원, 의사, 언론인, 가족 등 다양한 층위의 인물들을 통해 파편처럼 확산된다. 영화는 이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모아 연결하면서, 단절된 세계 속에서도 결국 사람은 서로를 통해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감염된 물류센터에서 살아남은 한 직원이 마스크 없이 거리로 나설 때, 그를 경계하는 눈초리 속에서도 누군가는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 그런 작은 장면들이 이 영화의 힘이다. 누군가의 잘못에 분노하기보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는 시선. 그것이 라스트 마일이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감정’이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스릴러의 색을 띠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를 추적하며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교차점, 의도적으로 은폐된 정보, 밝혀지는 음모의 그림자 등은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반전이나 충격이 아닌 ‘공감’이다.
그 공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영화는 묻는다.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타인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가? 감염자, 이방인, 방역 실패자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라스트 마일은 그런 질문을 통해 ‘감염’이라는 공포보다 더 큰 위협은 서로를 향한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택배 상자가 도착하는 그 ‘한 걸음’은 단순한 배송의 완결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회복을 상징한다.
재난의 기록,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서사
라스트 마일은 ‘재난 영화’라는 장르에 속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특수효과나 파괴 장면이 없다. 대신 영화는 차분하고, 때로는 무기력해 보일 만큼 현실적인 톤으로 일상을 무너뜨리는 재난의 본질을 파고든다. 그래서 더욱 깊게 와닿는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처럼 영웅이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고 박수를 받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평범하고, 약하고, 불안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에서 진짜 용기와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팬데믹 이후 사회가 재정비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물류 시스템이 복구되고, 사람들은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은 세계는 아니다. 모두가 한 차례의 상처를 겪었고,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라스트 마일은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한다. 재난은 끝났다고 선언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영화는 조용히 제시한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가 기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단순한 극적 재미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성찰.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시선. 그것이 바로 라스트 마일이 단순한 장르 영화 그 이상으로 남게 만드는 이유다.
결론 – 다시, 일상으로 가는 마지막 걸음
라스트 마일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었던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서로를 붙잡고자 했던 진심을 담은 일종의 기록이자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다.
택배가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손을 거쳐야 하듯, 우리 일상도 수많은 관계와 감정, 고통과 희생의 축적 속에서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말한다.
마지막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함께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또다시 마주칠 어떤 위기에도 함께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 끝에는, 여전히 누군가가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서로를 다시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며.
라스트 마일은 그렇게,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