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라는 살아 있는 풍경 – 부전시장이 전하는 공간의 힘
영화 부전시장은 단순히 한 재래시장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작품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포착한 기록이다. 감독은 부전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도시화와 전통의 충돌, 그리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흔적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 하나인 부전시장은, 수십 년 동안 도시의 중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 온 공간이다. 아침이면 트럭이 들어오고, 상인들의 목소리로 활기를 띠며, 손님들의 발걸음이 리듬처럼 이어진다. 이곳은 단순한 물건의 거래처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고 또 하나의 사회다.
영화는 이러한 부전시장의 일상을 장면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는다. 카메라는 인위적인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시장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라간다. 마치 관객이 실제 그 시장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건을 손질하는 손, 값을 흥정하는 소리, 찬바람에 맞서 일어나는 어깨들, 모든 것이 화면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이 영화의 힘은 거창한 드라마가 아니라, 이 작은 풍경들을 세심하게 기록해낸 데 있다. 시장의 상인들은 모두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세월이 녹아 있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는 삶의 무게가 스며 있다. 어떤 상인은 이 시장에서 40년을 일했다며, “이 자리가 내 전부”라고 말한다. 그 짧은 대사 속엔 잃어버릴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이 담겨 있다.
감독은 그 흔적들을 존중하듯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다. 부전시장이라는 공간이 단지 낡고 오래된 장소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살아 있는 공간’임을 영화는 증명한다.
변화하는 도시와 사라지는 공동체 –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부전시장은 단지 정겨운 재래시장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점점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과 함께 시장이 마주한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젊은 상인들의 부재, 인근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의 성장, 그리고 낡은 시설과 계약 문제 등은 시장의 생존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한 인터뷰에서 상인은 “요즘은 손님보다 빈 점포가 더 많아졌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 속 화면엔 폐점한 점포들이 하나둘 눈에 띄고, 그 사이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노년의 상인들이 남아 있다. 이 대비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 변화와 세대 간 단절을 상징하는 장면이 된다.
특히 시장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개발 계획은, 상인들에게 기회가 아닌 위협으로 다가온다. 낡은 시장을 철거하고 대형 쇼핑센터로 바꾸겠다는 행정의 논리는, 그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일이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지만, 상인들의 흔들리는 표정과 망설이는 목소리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시장이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 질문은 단지 공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는 시장이 단지 생계의 공간이 아니라, 이웃 간의 관계, 정서, 연대의 장소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매일 아침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육점 사장과 채소가게 아주머니, 손님보다 먼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작은 온정이 흐르는 소우주가 존재한다.
이 공동체는 시장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영화는 이 현실을 조용히 응시하며, 우리가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되묻는다.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 부전시장의 얼굴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람’에 집중하는 시선이다. 감독은 부전시장을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담아낸다. 과일가게 사장, 만두를 빚는 부부, 어묵을 튀기는 아주머니, 시장 끝자락에서 오래된 공구를 파는 노인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성으로 가득하다.
한 노상인은 “어릴 땐 시장이 세상의 전부였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 속에는 부전시장에서 자라고 늙어간 세대의 감정이 녹아 있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변화가 아니라 ‘지속’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 지속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 것이다.
또한 영화는 여성 상인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아낸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로서, 동시에 시장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시장이 단지 경제적 공간이 아닌 ‘삶의 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손짓과 걸음걸이, 땀이 밴 옷자락을 세심히 따라가며, 말보다 더 큰 이야기를 전한다.
시장 바깥의 변화는 거세지만, 이 사람들은 여전히 오늘도 점포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며, 삶을 이어간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잔잔한 존엄’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대단한 업적도 없고, 큰 목소리도 내지 않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며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이 ‘살아냄’ 자체가 영화의 주제다. 부전시장은 그 누구의 영웅담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일구는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 한다.
결론 –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시간들
부전시장은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기록이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대한 애틋한 헌사이며, 삶을 버티는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경의다.
영화는 화려하지 않다. 느리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 도시가 가진 온기와, 여전히 그 온기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공간, 외면했던 사람들, 당연히 여길 수 없었던 삶의 현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전시장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기억하고, 다시 바라본다면, 그것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영화 부전시장은 그 기억을 시작하게 만든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골목을 지나고, 따뜻한 국물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며,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은, 지금도 부전시장에서 이어지고 있다.